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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로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출애굽기 4:16-20)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간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라 한다. 내가 너를 보냈다고 말하라 한다. 그러나 그는 백성들이 그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광야로 도망치기 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를 믿을 리 만무하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던지라 한다. 그리고 그 지팡이는 뱀이 되었다. 기적이다. 하지만 또 한 번 모세는 거절한다.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하나님께 말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능력이 부족하다,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혀가 둔하다고 말하는데, 그가 미디안에 살면서 이집트에 사는 히브리인들의 말을 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한다. 그에 대해서 하나님은 노하시며, 아론을 대변자로 붙여주신다. 하나님의 의지가 모세의 거부를 이겼다. 결국 그는 이집트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집트로 돌아가는 모세를 묘사하는 성경의 기록이 인상 깊다. 그가 이집트로 돌아가는데 그의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렸다고 말하고 있다. 이 지팡이, 사실은 모세의 지팡이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런 물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화나 무협지 같은데 보면, 엄청난 기운을 가진 보검이나 무기가 등장하는데, 이 지팡이는 그런 신물이 아니다. 이건 그냥 지팡이였다. 아마 틀림 없이 나무로 거칠게 만든 것이었을 것이고, 목자가 양을 치는데 필요한 지팡이였다. 겉보기에는 특별한 지팡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값 비싼 것은 더더욱 아니고, 무슨 보석이 달린 왕이 쓰는 홀도 아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지팡이는 땅에 던져도 그냥 지팡이인데 이제는 땅에 던지면 뱀이 된다. 하나님의 능력이 지팡이를 통해 드러난다. 하나님은 그 지팡이로 모세가 이적과 기사를 일으키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모세 손에 있지만,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이 그 안에 있다. 구원의 역사가 지팡이를 통해 드러난다. 

지팡이가 대단한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팡이는 그냥 지팡이이다.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붙들고 계시고, 모세는 지팡이를 붙들고, 주님의 말씀을 믿으며, 홍해를 갈랐다. 모세 손에 있을 때, 하나님이 손에 있을 때,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와 구원을 나타내기에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십자가를 생각해 본다. 

주님 말고도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 셀 수 없는 십자가가 그 당시에 있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가 특별한 이유는, 그 십자가에 주님이 달리셨기 때문이다. 마치 모세의 지팡이처럼... 그래서 그 십자가는 우리에게 능력이고 구원이다. 형편 없는 나무 십자가가 주님 때문에 특별해지고, 하나님의 구원이 되었다. 

이제 우리를 생각해 본다. 

우리의 삶이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지팡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 보기를 원한다. 볼품없는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듯이 불 품 없는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이 되었다. 그 구원의 능력을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럴 수 있으신 분이시다. 볼품없는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되게 하신다. 내 삶이 구원 안에 있다면, 주님은 볼품없는 내 인생을 통해서 주님의 구원을 드러내실 것이다. 맞다. 그게 그리스도인이 사는 방식이다. 나는 모자라지만, 우리 주님 내 안에 계시기에 내가 살아갈 수 있고, 나는 할 수 없지만, 우리 주님 나와 함께 하셔서 구원을 맛보며, 그 구원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이 전파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지팡이와 십자가의 볼품없음으로 인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무시할 때, 그리스도인은 지팡이에 담긴 구원을 발견하며, 그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질그릇에 담긴 보배 같은 구원의 소식을 하나님의 지팡이에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