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에 씨가 떨어진다. 주님은 그 씨는 천국의 말씀, 하나님 나라의 말씀이다. 이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지면 열매를 맺는다.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어떤 책은 보통의 수확이 7배라고 하고 어떤 곳에서는 10배라고 한다. 그러니 대략 이삭 하나를 심으면 7~10개 정도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고, 15개 정도만 되어도 풍작이라 할 수 있는데, 주님은 놀랍게도 100배, 60배, 30배를 말씀하신다. 이건 그들에게 완전 로또다. 그런 씨앗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심어야 한다. 그런데 그 말씀이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1번 질문, "하나님 나라의 말씀, 천국 말씀"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를 기억해 보자. '천국이 가까웠다'이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지금 너희에게 다가온다는 소식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 그것에 복음이고 좋은 소식이다. 이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통치로 이루어지고, 예수님의 구원 사역, 십자가로 이루어진다. 사탄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더 이상 죄가 우리에게 왕 노릇하지 않고, 오직 주님께서 왕이 되셔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말씀이 되시고(요 1장), 사도들이 선포하는 복음이 주님의 구원으로 드러난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구원자로 맞이하라는 기쁜 소식이 천국의 말씀이다.
2번 질문, 그럼 땅은 무엇인가? 땅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어떤 땅들은 열매 맺지 못한다. 그런데 좋은 밭은 열매를 맺는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무리였다. 예수님을 알기는 알았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었고, 받아들였고, 제자가 되었다. 그들에게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 그 시대, 두 청중이 예수님 앞에 있었다. 지금 우리 역시도 동일한 현상을 마주한다. 주님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적어도 "예수" "Jesus" 를 모르는 이는 많이 없다. 하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은 적다. 거기에 대한 답이 오늘 본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소식은 보편적으로 선포된다. 하지만 믿는 자들은 적다. 택함을 받은 자가 적다. 참된 제자는 적은 수이다. 여기서 우리의 물음이 나온다. 나는 과연 제자인가? 나는 믿는 자인가? 신학적으로 예정론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예정론의 목적은 내가 신자가 아닌 이유를 하나님께 돌려서 핑계대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진지하게 이 질문 앞에 선다면, 우리 안의 믿음에 대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항상 주님 앞에 서야 함을 알게 된다. 무리인가 제자인가? 좋은 땅인가? 쓸모없는 땅인가? 하나님 핑계대기 전에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질문? 과연 결실, 즉 열매 맺는 삶이 무엇이며 열매는 무슨 뜻인가? 마태복음에서 열매는 믿는 자들의 선한 행위이다. 신자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마 3:8).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로 알 수 있다(마 12:33).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마 7:18), 즉 제자는 열매로 그의 삶을 드러낸다. 열매 있는 삶은 빛과 소금처럼 드러난다. 절대 감출 수 없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참된 하나님 나라의 열매가 맺힌다. 제자들의 자비로움과 용서, 원수 사랑 같은 천국의 특징이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의 산상수훈이 말하는 그런 삶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우리의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 "너희도 온전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온전해야 구원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더 많은 업적이나 더 완벽한 삶, 즉 자기 구원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코넬리아마크, '완벽주의에 작별을 고하다'). 이것은 제자다운 사람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라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으로, 즉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는 제자로 그렇게 사랑 안에 살라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 안에, 즉 주님의 사랑 안에,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다면, 하나님의 온전하라는 말씀이 우리 안에 이루어진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지만, 예수님 때문에 용서한다. 내 의지로는 줄 수 없지만, 예수님 때문에 내 것을 내어줄 수 있다. 나를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에게 용서를 말할 수 있는 삶이 바로 제자의 삶이다.
결실은, 열매는, 결코 우리 인생의 어떤 성공이나, 출세나 부유함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진정한 열매는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 삶이다. 제자의 삶, 주님과 함께 할 때 드러나는 우리의 삶의 열매들, 결코 감출 수 없는 소금과 빛의 삶, 그것이 우리의 열매이다. 그러니 제발 좋은 땅이 되자. 내 욕심으로 말씀의 씨앗이 자라는 것을 막지 말자. 유혹과 핍박 앞에서 무너지지 말자, 무엇보다 말씀을 듣고 이해하자. 정말 좋은 제자로 살자. 그렇게 되도록 기도하자. 이것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 의미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