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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 예수님께 그분이 당신이냐고 묻다.

하늘집살기 2024. 7. 10. 15:18

한 입으로 두 말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나중 가서 딴소리하면 영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런 사람하고는 엮이지 않는 게 모쪼록 좋은 일이다. 그런데 성경에 그런 사람이 등장한다. 그것도 예수님도 인정하는 그런 사람인데...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2-3) 

참 이상한 일이다. 분명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고, 그 때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히 알았고, 요한복음에 따르면 세례 요한 자신도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고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거 하지 않았는가? 그가 예수님을 보고 말하기는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묶기에도 부족한 종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당신이 그분이 맞냐고 요한은 묻고 있다.  이 말은 꼭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첫 번째로 생각해 봄직한 일은 그의 상황이다. 감옥에 갇혀서 몸도 마음도 약해지고 믿음도 없어져서 그렇게 묻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요한은 감옥에 갇혔지만, 왕 앞에서도 담대했고, 끝까지 자신의 믿는 바를 철회하지 않았다. 그가 옥에 갇힌 일은 분봉왕 헤롯이 헤로디아와 한 결혼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한 것 때문인데, 감옥에서도 타협하지 않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그의 믿음이 떨어져서 그렇다는 것은 성경의 말하는 바가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두 번째 가능성은 정말로 예수님께서 메시야인지 확인해 보는 물음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사역과 연결된다.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심을 알고 믿었지만, 그가 어떤 일을 이 땅에서 하실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메시아라면 다윗왕처럼 이스라엘을 정의롭게 만들 사람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가 왕이 되어서, 아니면 지도자가 되어서 모든 불의에 맞서는 그런 왕으로 세워질 것이고, 그런 자기도 풀려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감옥에 갇혔는데, 이런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예수님 당신은 정말로 메시아가 맞습니까?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십니까라는 질문이다. 감옥에 갇힌 것이 힘들다기보다는 불의한 세상에 대한 당신의 답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거기에 대한 주님의 답은 눈먼 사람이 보고,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들린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복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선포된다. 이것이 메시야의 사역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불의에 맞서는 방법이 예수님이 왕이 되어서 나쁜 사람들을 벌주고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억눌린 사람, 병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 기대하는 메시야의 사역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주님의 사역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우리는 자주 오해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야, 주님이라면 이렇게 하셔야 해! 하나님은 이런 분이셔,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야... 하지만 우리도 오해할 수 있고, 잘못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세례 요한도 그랬는데, 우리 역시도 그런 사람들이다. 완벽하다고 완전히 안다고 생각한 순간 우리는 겸손을 잃고 오만한 자리에 앉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기를 쉽게 쉽게 해 버린다. 그러면서도 주님의 나라를 위한다고 생각하며 산다. 

 

세례 요한에게서 배우자. 뭔가 자기 기대나 이해와 맞지 않을 때,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예수님께 묻는다. 이래야 해 저래야 해 하기 전에 요한은 예수님께 당신이 그분이냐고 묻는다. 우리는 묻지 않고, 하나님께 대들고, 묻지 않고, 사람들에게 가르치려 든다. 한국 교회 여러분들 좀 겸손해지자. 담대함이 필요할 때는 가만히 있고, 연민과 동정이 필요할 때는 담대하게 지적하는 그런 습관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묻고, 그 답을 겸손히 받아들이자. 우리가 오해하고 실수할 수도 있음을, 성경을 많이 알고 신학을 공부하고, 신앙생활을 오래했더다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주님께 물으며 살아가는 겸손함을 잃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