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절)
산상수훈의 첫 말씀.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첫 번째 강화(설교) 중에 첫번째 구절, 그런 의미에서는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오는 말씀이다. 그런데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뭔말인지,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심령, 영어로 spirit, 원어인 그리스어로 프뉴마티. 프튜마티는 프뉴마에서 왔는데, 바람, 숨, 영 이라는 뜻이고, 성령님을 가리킬 때도 쓰지만, 여기서는 사람의 마음이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마음"이라고 쉽게 번역되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가난하다는 건데, 이것은 물질적인 가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즉 부자여도 마음이 가난할 수 있고, 가난해도 마음이 가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초점을 두신다.
그럼 누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인가하는 질문이 든다. 가난한 사람의 특징은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다. 가난 때문에 고통을 받으니까, 가난이 없는 상태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이야 세끼 식사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정말로 가난했던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시대는 가난은 곧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고, 덮을 것이 없고, 쉴 것이 없는데,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에 필요한 것들, 그게 무엇이든 그것을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난을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가난은 실제적이고 절박한 것이다.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생명을 잃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가난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가난을 말씀하신다. 그것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지금 마음에 고통 받는 받는 사람, 처절한 죽음의 실제를 경험하는 그런 사람이다. 마음이 괴롭고 짓눌린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을, 구원자 메시야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를 살려서 번역한 것이 NLT인데, 그들의 필요를 깨닫는 사람( those who are poor and realize their need for him) 이라고 번역했다. 유진 피터슨이 의역한 메시지 성경은 좀 더 극적으로, "벼랑 끝에 선 있는 너희는"(한국어판) 이라고 표현한다. 벼랑 끝에 선 사람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자신을 구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그래서 메시야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죄의 무게, 인생의 무게, 고통과 절망 속에서 고통 받는 자가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는 그런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이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선언한다. 그런 너희에게 복이 있는데, 그런 너희가 복인데, 천국이 너희 것이라고... 하나님 나라가 너희 것이라고, 바로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께서 너희를 다스리신다고 선포하신다. 엄청난 선언이고 선포이다. 그렇게 죄의 고통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 말씀하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예수님이 거기에 계시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마음이 가난하기가 그리 쉬운가? 자신의 죄와 운명을 깨닫고 주님을 바라보기가 그리 쉬운일인가? 아니다. 이것은 은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는 들어가고 싶으면서 처절한 마음의 가난은 경험하고 싶어하지 않고, 그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조차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자들의 것이다.
루터나 웨슬리는 이신칭의를 만나고 그들의 삶이 바뀌었다. 공통점은 그 이전에 마음의 가난으로, 죄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말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값싼 구원을 말하고, 함부로 구원의 은혜를 잊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가난해 보지 않았으니까, 죽음의 고통, 피할 수 없는 절망을 경험하지 않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만 찾으니까.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작은 나의 소망은 마음의 가난을 경험하는 자가 되어 늘 절박하게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을 바라고 주님과 동행하기를 사모하는 것이다. 절박함!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그런 간절함. 그 삶의 자세를 잊지 않고, 그분의 손의 은혜를 가장 보배로운 것으로 사모하는 그런 마음으로 삶을 채워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